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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의 여름방학은 무려 3개월.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막막하기만 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에게 아이의 긴 방학은 곧 '일이 두 배가 되는 시간'을 뜻한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계획부터 세웠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첫 1년,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온 첫 여름방학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아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는 시점에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왔다. 학기 중간보다는 학년이 새로 시작될 때 미국 학교에 들어가는 편이 적응에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4학년 2학기를 건너뛰고 곧바로 미국 5학년으로 입학했다.
대부분의 과목은 곧잘 따라갔지만, 영어 '쓰기'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영어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했다. 책 읽어 주기를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말하기, 읽기, 듣기는 모두 무리가 없었다. 다만 부족했던 영역이 쓰기였다. 미국에서 1년을 보낸 지금도 아이가 언어 면에서 가장 힘들어하는(그리고 가장 하기 싫어하는) 분야는 여전히 쓰기다.
그런데 수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한국 애들은 미국 오면 무조건 수학은 톱"이라는 말을 익히 들었지만, 4학년 2학기까지 건너뛴 상황이라 혹시 뒤처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그 걱정은 기우였다.
두 학기에 걸친 MAP 테스트(미국의 전국 단위 학력 평가 시험 같은 것)가 끝난 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아이가 수학 MAP 테스트에서 평균을 훨씬 웃도는 성적을 내고 있고, 5학년 수학은 아이에게 너무 쉬워 자칫 흥미를 잃을 수 있으니 6학년 수학으로 월반을 시키자는 제안이었다.
이미 4학년 2학기를 건너뛴 상태에서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까지 건너뛰자는 이야기라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건너뛴 부분은 본인이 보완해 주겠다며, 아이의 테스트 결과를 보면 7학년으로 올려도 될 것 같지만 일단 한 학년만 올려 보자고 했다. 선생님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지만, 솔직히 걱정이 없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5학년을 마무리한 지금, 놀랍게도 아이는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학 동안 7학년 수학을 미리 공부하고 싶다는 말까지 꺼냈다.
시골 학교라 그런지 부모가 참여하는 행사도 무척 많았다. 개학 일주일 만에 시티비치에서 친목 도모 피크닉이 열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하루 종일 뻘쭘하게 버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학년 마지막 날 학교 전체가 집에서 40분 거리의 테마파크로 함께 놀러 갔을 때는 학년 초의 어색했던 시티비치 모임과는 사뭇 달랐다. 그사이 아이 못지않게 나에게도 학부모 친구들이 생겨,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학년이 끝나고, 3개월이라는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재택근무자이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내 일은 두 배로 늘어난다. 조용히 일할 시간도, 공간도 사라진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스트레스가 밀려왔고, 결국 계획표부터 짜기로 했다.
아래는 대략적으로 그려 본 시간표다. 다소 '한국 엄마스러운' 시간표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기준을 세워 두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해 보려 한다.

한창 클 나이인 열한 살 남자아이에게 꼭 필요한 운동을 넣었고, 사춘기로 넘어가는 시기인 만큼 이 무렵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골라 도서관에서 읽고 간단한 후기를 쓰도록 했다. 수학을 시간표에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아이의 요청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7학년 예습을 하고 싶어 해서 Prealgebra 교재로 공부하기로 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잠시 멀어졌던 한글책 읽기도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할 수 있도록 시간표에 담았다.
우리 집은 시내 외곽에 있는데, 걸어서 5~ 10분, 차로 2~5분 거리에 YMCA(피트니스 센터와 수영장이 있다), 공원, 도서관, 학교, 교회까지 거의 모든 것이 모여 있다. 너무 편리한 위치라, 외곽에 넓은 땅을 사서 농사도 짓고 동물도 키우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은 못 들은 척하는 중이다. 이런 입지 덕분에 도서관과 수영(운동) 일정을 짜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첫 이틀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곧바로 운동하러 가는 흐름이라면 앞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 독서는 단순히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만 목적을 두지 않았다. 아이의 정서 발달에 맞춰 자아 탐색, 충동 조절, 관계 형성, 자기 행동의 객관화, 회복탄력성, 문제 해결력을 다룬 책들을 골랐다. 책 몇 권을 읽는다고 당장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지금 읽은 것들이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다음은 방학 동안 함께 읽어 나갈 책 목록이다.
| 주차 | 책 제목 | 작가 | 함께 나눌 주제 |
|---|---|---|---|
| Week 1 | Ghost | Jason Reynolds | 충동 조절 / 분노의 건강한 분출 |
| Week 2 | The Absolute Value of Mike | Kathryn Erskine | 유연한 사고 / 다름의 인정 |
| Week 3 | The Adventures of Tom Sawyer | Mark Twain (축약본·그래픽 노블 추천) | 자아 탐색 / 카타르시스 |
| Week 4 | Wonder | R. J. Palacio | 역지사지 / 다각적 시점의 이해 |
| Week 5 | The Little Prince | Antoine de Saint-Exupéry | 관계 형성 / 인내와 배려 |
| Week 6 | Harriet the Spy (전반부) | Louise Fitzhugh | 자기 행동의 객관화 |
| Week 7 | Harriet the Spy (완독) & The Giving Tree | Louise Fitzhugh / Shel Silverstein | 결과 수용 / 이타성과 관계 |
| Week 8 | The Martian (Classroom Ed.) & Gulliver's Travels | Andy Weir / Jonathan Swift | 회복탄력성 / 문제 해결력 |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책을 고를 때 내가 세운 기준을 짧게 덧붙인다. 첫째, 주인공의 나이가 우리 아이와 비슷해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책을 우선했다. 둘째, 읽고 난 뒤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라고 한 가지라도 대화를 나눌 거리가 있는 책을 골랐다. 셋째, 분량과 난도를 한 번에 몰아넣지 않고 주차별로 조금씩 호흡을 조절했다. 후기를 거창하게 쓰게 하기보다 두세 문장이면 충분하다고 정해 둔 것도,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책 읽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시간표와 독서 목록까지 정리해 두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계획이 3개월 내내 그대로 지켜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랄 것이고, 어떤 날은 도서관 대신 친구 집에 가고 싶어 할 것이며, 나 역시 마감에 쫓겨 운동 시간을 미루는 날이 분명 있을 테니까.
그래도 계획을 세운 이유는, 흔들릴 때 돌아올 '기준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고 막막했던 3개월을 우리만의 리듬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다. 미국 학교의 긴 여름방학이 처음에는 막막함으로 다가왔지만, 이렇게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기대가 더 커졌다.
운동으로 몸이 자라고, 책으로 마음이 한 뼘 더 자라고, 수학으로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쌓는 여름. 무엇보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아이와 내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여름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긴 방학이 끝날 무렵, 아이도 나도 한 뼘씩 더 자라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