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6분 읽기
한국 도시 생활을 접고 미국 북부 아이다호로 이주한 지 1년, 자산의 절반을 쓰고도 후회는 없다. 그 1년의 좋았던 것과 힘들었던 것을 솔직하게 적어 본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아이가 4살쯤이었을 때부터 학교 때문에 미국 이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뻔한 이유지만, 한국의 획일화된 공부 위주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 환경도 그렇다. 키즈 카페, 이벤트성 체험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환경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미국에 가면 아이가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또 다른 이유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연과 함께해야 행복한 사람인데, 사무직 일을 하면서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편안하고 나름 만족했지만, 가슴이 뛰는 즐거움은 없었다. 국제 커플로서 결혼 후 쭉 한국에서 살았으니, 이제 미국에서 사는 것도 괜찮고 공평할 것 같았다.
미국 이주 이야기가 처음 나온 2018년에 실천했다면 여러모로(부동산 가격, 남편 커리어 등)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작년(2025년)에야 우리는 미국으로 왔다. 너무 늦게 왔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다가도, 이제라도 와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주하면서(환율과 부동산 가격 등) 자산의 절반을 잃었지만, 지금이라도 오게 된 것에,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자리 잡을 때까지만 고생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다.
처음 미국 이주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남편에게 "미국으로 간다면 어디로 갈까?"라고 물었다. 남편의 대답은 확고했다. 대도시는 절대 안 되고, 대부분의 주(States)도 이미 후보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이유는 해당 주의 정치 성향과 정책들이었다. 그때는 남편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와서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편이 유별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남편이 나에게 제안한 곳이 바로 이곳, 북부 아이다호였다. 시아버지가 캐나다인이라서 남편이 어릴 적 이곳을 통해 캐나다를 가곤 했다. 우리가 정착한 이 마을은 미국에서도 손꼽히게 큰 호수(Lake Pend Oreille)를 끼고 있고, 스키 리조트(스와이처)도 있는 나름의 휴양지이다. 남편 가족이 바로 옆에 있는(그래 봤자 3시간 반 거리) 워싱턴 주에 사는 것도 한몫했다.
전체적인 풍경은 한적하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범죄율도 상당히 낮은 도시라고 한다. 이 지역 토박이 인터넷 설치 기사 아저씨가 말해 주기를, 15년 전쯤만 해도 사람들이 문도 안 잠그고 다녔다고 한다. 사실 가끔 문도 안 잠그고, 차문도 안 잠그고 다닐 때도 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캘리포니아 주에서 부자들이 많이 건너와 부동산 가격이(과장 없이) 5~10배까지 뛰었다. 최근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 '아름답던' 가격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무조건 자연이 1번이다. 내가 사는 곳은 샌드포인트(Sandpoint) 시내인데, 걸어서 5분 거리에 커다란 공원 세 개가 붙어 있다. 매일 아침 아이 학교에 데려다주며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와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디를 봐도 아름답다.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 오는 대로 아름다운 곳이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호숫가에 가면 시티비치도 있다. 한국이라면 맘먹고 가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여기서는 5~10분 거리에서 해결된다. 여름엔 시티비치, 겨울엔 스키, 모두 동네에서 해결된다.
도로도 한적하다. 남편의 '스피디'한 운전 습관이 저절로 고쳐질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양보하며 운전한다. 처음 운전 연습할 때는 각종 표지판과 신호 때문에 조금 헷갈렸지만, 한국에 비하면 여기 도로는 천국이다.
홈리스가 없다. 1시간 거리의 워싱턴 주 스포캔만 가도 홈리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예전에 시애틀에서는 도심 한 블록 코너에 홈리스들이 진을 치고 잘 준비하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는데, 내가 사는 마을에는(감사하게도) 홈리스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안전한 도시에 사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사람들이 온화한 편이다. 화내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한두 번 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친절하고 안정적이며 온화하다.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있다. 제대로 된 옷 가게만 빼고. 옷을 사려면 1시간쯤 있는 좀 더 큰 도시로 가야 한다. 월마트, 슈퍼원, 요크스, 세이프웨이 등 대형 마트와 North 40, 홈디포, Big 5 등 웬만한 건 다 있다. 종합 병원도 하나 있고, 음악원(아이)도 있다. 작은 극장도 하나 있는데, 연극·공연 위주다. 또한 관광지라서 인구 수에 비해 식당이 많다.
작년 여름 처음 왔을 때 가장 어려움을 겪은 것이 커피숍 찾기였다. 다들 너무 일찍 영업을 마쳐서, 남편 퇴근 후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 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편의점도 없다. 타운에 있는 웬만한 식당과 가게는 5시쯤이면 모두 문을 닫는다. 술도 파는 바는 그래도 밤 8~10시까지 열기도 한다.
또, 시골이라서 그런지 대중교통은 드물다. 내가 아는 한 버스는 단 한 대. SPOT이라는 버스가 타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차가 없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 같다. 택시도 가끔 한 대씩 보인다. 길거리에서 잡는 택시는 당연히 없고, 필요하면 택시 회사에 전화해서 불러야 한다. 보통 가정마다 차량을 2대 이상 가지고 있다.
식당은 많지만, 아직 마음에 쏙 드는 식당은 찾지 못했다. 대부분 너무 비싸거나, 맛이 그냥 그렇거나, 너무 비싸고 맛도 그냥 그렇다. 그래서 집에서 엄청 많이 요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아시아 음식 재료를 파는 곳도 없고, 아시아 음식 파는 식당도 많지 않다(한국 식당은 아예 없음). 김치와 한국 라면은 마트에서 가끔 파는데, 김치는 한국 김치 맛이 아니라서 담가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긴다. 배추(한국에서라면 하급에 속할 배추)는 그나마 구할 수 있지만, 무는 찾을 수 없다. 무를 팍팍 넣은 김치와 깍두기가 그립다. 그런 재료를 구하려면 1시간 반 거리의 큰 도시(스포캔)를 가야 한다.
한국인이 없다. 한국 혈통(이민 2세대)은 두어 명 정도 만났지만, 아예 한국에 가 본 적도 없고 한국어를 말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어가 너무 그리워 K-드라마만 줄창 보고 있다.
원래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고 했는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지난겨울에는 '이례적으로' 눈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5월이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하다. 해가 나면 조금 따뜻한 느낌은 있지만 더울 정도는 아니다. 집에 바닥 난방이 없어서, 한국의 온돌에 익숙한 나에게는 계속 추운 느낌이다. 그래서 뜨끈함을 느끼려고 라디에이터를 사서 뜨겁게 틀어 놨는데, 겨울에 전기세가 400달러가 넘게 나왔다.
택배는 보통 1주일 이상 걸리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이곳이 아이다호 주 중에서도 북쪽에 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택배를 시키면 잊을 만하면 도착한다.
나는 도시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러 편의시설을 즐긴다, 쇼핑을 즐긴다, 아이에게 고퀄리티 사교육을 시키고 싶다, 한국인 커뮤니티가 꼭 있어야 한다 등의 욕구를 가졌다면 이곳은 당신에게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곳을 찾는다, 학교·대학·학군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다양한 레저 활동을 사계절 내내 즐기고 싶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라면 주거비를 좀 많이 써도 상관없다, '천국이 이런 곳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곳에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곳 북부 아이다호는 당신에게 완벽한 곳이 되어 줄 것이다.
미국은 출신 주마다 나중에 아이가 대학에 갈 때 학비 지원 제도 등이 다양한데, 아이다호 주는 그 혜택이 크지 않은 곳일 뿐더러, 딱히(한국인에게) 인지될 만한 유명한 대학도 없다. 그런 면에서는 아이다호 주가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아이다호 주의 소득은 전체적으로 낮은 편이다. 생활비·거주비가 비싼 것과는 대조되는 현상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의 직업(전기기사, 의사, 개인 사업 등)이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학교의 경우 국·공립 학교 외에 다양한 소형 사립 학교가 있다. 사립 학교 대부분은 교회 기반이다. 그리고 꽤 많은 아이들이 홈스쿨링을 한다. 홈스쿨링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주에서 지원도 해 줘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 많다. 나도 해 볼까 생각해 봤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 아이가 외동이고 친구들을 좋아해서, 사회성 향상을 위해 지금 다니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 학교 관련해서 많이 조사하고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학교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주비와 정착금으로(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자산의 반 이상을 썼다. 항공비와 국제 운송비로 시작해, 미국 현지 물가도 많이 비싸고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많다. 처음 와서 차량을 구매하고 보험에 들고, 가구와 가전 등을 구입하는 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고, 렌트비도(알다시피) 상당하다. 나도 이주를 계획하면서 비용 면에서 여러모로 계산을 했었는데, 그때 계산한 금액의 2배 이상 들어간 것 같다.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정착하기가 더 힘들 수 있으니, 초기 자금은 넉넉히 준비해 두기를 바란다.
이주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이주'를, '이곳으로' 하겠냐고 묻는다면 "YES"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의 경우 미국을 떠나 생활한 지 너무 오래되어 경력상으로는 완전히 초심자로 돌아가 직업을 구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5년만 일찍 왔더라면 어땠을까,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왔더라면 지금쯤 경제적으로 참 편안할 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아예 오지 않는 옵션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생활에서 그리운 면도 많다. 내 입장에서는 친구, 인간관계, 편의시설 등이 그렇고, 한국 음식과 배달 문화도 너무나 그립다. 하지만 아이가 점차 주도적으로 생활을 이끌어 가고,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고, 나는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힐링되면서 '여기 오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