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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연휴를 끼고 여름휴가 겸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에 온 지 딱 1년(최초 입국일 기준)이 되던 때,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었다. 바로 미국에 있는 모든 국립공원을 가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원대한 꿈의 첫 번째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시간적, 금전적 효율성을 고려해 집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몬태나 주의 글레이시어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이었다. 마침 공원 기념품 숍에 국립공원 여권(Passport)을 팔길래 주저 없이 샀고, 그곳에 감격스러운 첫 도장을 찍었다.
총 3박 4일 일정으로, 첫 이틀은 캠핑을 하고 마지막 밤은 국립공원 내 숙소를 예약했다. 내가 사는 아이다호 주 샌드포인트에서 몬태나 주의 글레이시어 국립공원까지는 내비게이션 상으로 3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국립공원 내 캠핑장들은 진작에 예약이 꽉 찼거나 예약 창이 열리자마자 사라져 버려서, 차선책으로 공원 바로 바깥에 있는 사설 캠핑장을 예약했다. 작은 식당과 매점도 갖춰져 있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도상으로 확인한 글레이시어 국립공원의 크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이 거대한 공원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도로가 바로 고잉 투 더 선 로드(Going-to-the-Sun Road)인데, 한여름이 아니면 부분적으로만 통행이 가능하다. 엄청난 눈이 쌓여 있거나 베어 액티비티(곰 출현) 등의 안전상 이유 때문이다. 사전 조사를 할 때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여행 날짜를 도로가 완전히 열리는 7월 이후로 정했다.
고잉 투 더 선 로드를 드라이브하며 마주한 풍경은 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였다. 결혼하러 미국에 와서 그랜드캐년에 처음 갔을 때도 "정말 미국 국립공원은 스케일이 다르구나" 싶었는데, 두 곳의 매력은 확연히 달랐다. 그랜드캐년이 아래쪽을 굽어보며 느낄 수 있는 놀라움이었다면, 글레이시어 국립공원은 계속해서 위쪽(설산과 하늘, 구름)을 우러러보며 느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면서도, 매번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경치 탓에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은 운이 정말 좋아서 야생동물도 원 없이 봤다. 멀리 떨어져서 보긴 했지만(가까이 있었으면 기겁하고 도망쳤을 것 같다) 그리즐리 베어 가족도 보고, 길가에서는 블랙 베어 가족도 마주쳤다. 다람쥐와 땅다람쥐는 셀 수 없이 많이 봤고, 산양, 빅혼양, 뱀(!), 두꺼비, 사슴, 코요테까지 튀어나오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거대한 동물원 같았다.
글레이시어에는 여러 하이킹 코스가 있는데, 몸은 힘들었어도 단연 비교 불가였던 최고의 코스는 로건 패스(Logan Pass)의 히든 레이크 오버뷰(Hidden Lake Overview) 코스였다.
7월임에도 트레일의 80% 정도가 눈으로 뒤덮여 있어, 정확히 어디가 하이킹 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어설프게 녹은 눈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거나 아예 엉덩이를 대고 미끄러지듯 썰매를 타며 이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하이킹 코스에서 사슴과 산양 여러 마리를 보았다. 산양은 새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것이 꽤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슴은 내가 사는 샌드포인트 동네에서 마주치는 아이들보다 조금 더 사이즈가 컸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야생동물들은 대체적으로 인간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 같았다. 크게 놀라거나 도망치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람쥐는 우리가 스낵바를 꺼내자마자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듯 공격적(?)으로 우리에게 달려들 정도였다. 사슴도 사람이 다가가든 말든 자기 할 일을 계속하는 무심한 느낌이랄까.
공원의 대표적인 호수인 맥도널드 호(Lake McDonald)와 세인트 메리 호(St. Mary Lake)도 잊을 수 없다. 둘 다 빙하가 녹아든 물이라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갑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는 그 차가운 얼음물로 쉬지 않고 다이빙을 해대며 대자연을 만끽했다.
둘째 날 고잉 투 더 선 로드를 다시 드라이브할 때의 일이다. 갑자기 정상 근처에서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차 한 대가 사고가 난 것이었다. 오른쪽 앞바퀴가 희한한 방향으로 꺾여서 돌아가 있었다. 양옆이 낭떠러지인 그런 좁은 산길에서 사고를 당하면 정말 생사를 걱정해야 한다.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니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음식은 대체적으로 집에서 챙겨간 것들을 먹었고, 외식은 딱 두 번 했다. 지역 맛집이라는 캠핑장 내 식당에서 한 번, 마지막 날 오전 국립공원 내 식당에서 한 번 사 먹었다. 둘 다 관광지답게 가격은 비쌌고 맛은 무난하게 먹을 만했다. 미국 식당을 갈 때마다 "양을 좀 줄이고 돈을 덜 받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이곳은 비싸면서 양도 많지 않아 물가를 제대로 체감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아직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명색이 세계적인 국립공원이라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도 자주 들렸다. 그러다 3일째 저녁, 마침내 한국인 가족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물 만난 고기처럼 한국어를 쏟아냈다. 한국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동포를 만나 한국말로 떠들 수 있는 것 자체가 그저 신나고 감사한 일이었다.
미국 국립공원 정복이라는 목표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웠다. 웅장한 설산과 맑은 빙하 호수, 야생동물들과 함께했던 이 3박 4일은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